Be Sober and Reasonable
Heyd, M. (1995). Be sober and reasonable: the critique of enthusiasm in the seventeenth and early eighteenth centuries (Vol. 63). Brill.
1. The Theological Critique of Enthusiasm
- 열광주의 비판의 배경
- 범위: 본 장은 종교개혁 초기부터 17세기 중반까지 개신교 신학 담론이 ‘열광주의(Enthusiasm)’라는 현상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분석함
- 질문: 신학자들이 열광주의라는 용어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이것이 기성 교회에 어떤 도전을 주었는지, 그리고 열광주의자들의 예언, 황홀경(Ecstasy), 경련(Convulsions) 등을 어떻게 설명하고 무력화했는지를 다룸
- 루터의 초기 대응: 열광주의에 대한 비판은 종교개혁 거의 시작과 동시에 나타남. 1521년 말 비텐베르크에 나타난 ‘츠비카우 예언자들(Zwickau prophets)’에 대해 마르틴 루터가 1522년에 공격을 시작한 것이 그 기점
- 츠비카우 예언자들(Zwickau prophets): 1522년 초 비텐베르크에서 활동한 세 명의 급진적 종교 개혁가들로, 성경보다 성령의 직접적인 계시를 강조하며 종교 개혁의 방향을 급진적으로 이끌려 했던 인물들
- 슈베르머(Schwärmer)
- 루터는 이들을 지칭할 때 ‘열광주의자’ 대신 ‘슈베르머’라는 용어를 사용함
- ‘떼를 지어 다니는 벌들’에서 유래한 것으로, 성경을 매개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됨
- 재세례파(Anabaptists)와의 논쟁이 격화되면서 ‘열광주의자’라는 라벨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함
- 하인리히 불링거(Heinrich Bullinger)
- 1560년 『재세례파의 기원(Der Widertoeufferen Ursprung)』을 출판하며, 재세례파를 13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는데, 그중 제7그룹을 ‘열광주의자(Enthusiastae)’ 및 ‘황홀경에 빠진 형제들(Extatici)’로 명명함
- 불링거의 사례: 디트리히 슈나이더(Dietrich Schneider) 사례 (1535년), 토마스 쉬커(Thomas Schücker) 사례 (1526년). 둘 다 알몸으로 질주함
- 불링거 왈,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자신의 상상이나 악마의 환상에 귀를 기울일 때 이런 불순한 일이 발생하며, 이를 성령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신성모독임
- 열광주의의 정의와 특징
- 신학적 태도 (종말론적 기대): 열광주의자들은 공통적으로 ‘주의 날(Day of the Lord)’이 임박했다고 주장
- 권위의 근거 (직접적인 계시 주장): 직접적인 신적 영감(Direct divine inspiration)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성경의 권위보다 앞세움
- 외적 행동 (신체적 황홀경과 경련): 불링거는 이러한 모습이 마치 ‘간질(falling sickness)’ 환자의 증상과 유사하다고 묘사
- 17세기 네덜란드 신학자들의 비판
- 1640년대 중반, 영국 혁명이 급진화되면서 열광주의에 대한 신학적 논쟁은 더욱 정교해짐
- 프리드리히 스판하임(Friedrich Spanheim): 열광주의자를 ‘악마적, 우울질적, 혹은 자발적인 환상에 의해 자신과 타인을 속여, 이를 신적 계시라고 주장하는 광신자’로 정의함
- 요하네스 호른베이크(Johannes Hoornbeek): 모든 신자에게 나타나는 성령의 일반적 역사로서 신적 열광(Ordinary Divine)과 달리, 거짓 열광(Negative/Diabolic)은 악마적 기원을 가짐
- 열광주의 비판의 핵심: 무슨 권한으로 말하는가
- 신학자들은 “사랑하는 여러분은 자기가 성령을 받았노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다 믿지 말고 그들이 성령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를 시험해 보십시오. 많은 거짓 예언자가 세상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요한1서 4:1)를 구호로 삼음
- 열광주의자들은 코린토1서 14장을 인용함 (예언과 방언)
- 에라스무스와 츠빙글리 등은 사도 바울이 말한 ‘예언’을 미래 예측이 아니라 ‘성경의 해석과 강론’으로 정의함
- 불링거와 스판하임은 기적과 특별한 은사가 초대 교회(성립기)에는 필요했지만, 성경이 완성된 현대 교회(확립기)에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으며 중단되었다고 주장함
- 신학적 비판의 사회적, 정치적 비판으로의 확대
- 신학자들은 열광주의가 낳은 비극적인 결과들을 그들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증거로 삼음
- 뮌스터 반란(Münster rebellion)
- 재세례파가 독일의 도시 뮌스터에서 신정정치를 세우려던 시도
- 신학자들은 재세례파 열광주의자들이 뮌스터에서 일으킨 참혹한 사건을 열광주의 교리가 초래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종교적, 도덕적 결과의 전형으로 제시함
- 열광주의에 대한 세 가지 설명
- 악마론적 설명(Demonological Account): 가장 보편적인 설명으로, 루터는 츠비카우 예언자들의 배후에 악마가 있다고 보았음
- 의학적 설명(Medical Account): 그들이 주장하는 영감이나 예언은 사실 우울질(melancholy)이라는 질병의 신체적 증상일 뿐이라고 분석함
- 정치적/고의적 기만(Voluntary Illusions): 불순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신적 영감을 받은 척 연기하는 사기꾼(Cheats)으로 묘사함
- 중보(Mediation)의 방어
- 열광주의에 대한 신학적 비판의 핵심은 결국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 체계를 수호하는 것
- 성경(Scripture): 직접 계시에 맞서 기록된 말씀의 유일한 권위를 방어함
- 사역자(Ministry): 개인의 주관적 영감에 맞서 훈련받은 목회자의 직무를 방어함
- 그리스도론(Christology): 영적 우월주의에 맞서 육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 중보를 강조함
- 열광주의는 이러한 중보의 상징들을 건너뛰어 하나님께 직접 도달하려 했기에, 개신교 정통주의 신학자들에게는 신앙 체계 전체를 뒤흔드는 가장 위험한 적으로 간주됨
2. Melancholy and Enthusiasm: The Sources of the Medical Critique of Enthusiasm
- 열광주의의 의학화(Medicalization)
- 열광주의자들과의 논쟁은 점차 신학이나 철학을 넘어 의학적 근거 위에서 전개됨
- 멜랑콜리(Melancholy)로의 ‘의학적 소외’ 과정은 미셸 푸코가 설명한 ‘비정상인의 사회적 배제’와 맥을 같이하며, 사회·문화적 질서의 이데올로기적 기반이 변화하고 있었음을 보여 줌
- 열광주의를 생리적, 심리적으로 분석하는 방식은 이후 18세기 이신론자들이 기독교적 영감 전체를 비판하는 도구로 쓰이게 됨
- 고대 철학 및 의학 전통에서의 연관성
- 플라톤의 광기(Furor/mania) 개념: 플라톤은 『파이드로스(Phaedrus)』에서 광기(mania)를 신성한 광기와 병적인 광기로 구분함
- 아리스토텔레스의 『문제들(Problemata Physica)』 XXX, I: 멜랑콜리-예언 간 연결, 천재성과 흑담즙 체질(atrabilious temperament)의 관계, 흑담즙이 과잉되면 황홀경에 빠지거나 영감을 얻게 된다는 생리학적 설명 등 자연주의적 설명을 제공함
- 카파도키아의 아레타이오스(Aretaeus of Cappadocia), 에페소스의 루포스(Rufus of Ephesus) 등 역시 황홀경을 질병의 증상으로 봄
- 중세 의학과 멜랑콜리의 기독교화
- 중세에는 고대의 의학적 지식이 기독교적 가치관과 결합하면서, 멜랑콜리의 원인과 증상을 종교적인 틀 안에서 해석하기 시작함
- 콘스탄티누스 아프리카누스(Constantinus Africanus), 베르나르 드 고르동(Bernard de Gordon) 등
- 르네상스와 멜랑콜리의 긍정적 재조명
- 멜랑콜리를 천재성이나 신성한 영감과 다시 연결하려는 시도가 나타남
- 마르실리오 피치노(Marsilio Ficino): 플라톤의 ‘신성한 광기’를 아리스토텔레스적 ‘멜랑콜리’와 동일시함
- 파두아 학파(Aristotelian School of Padua): 폼포나치(Pietro Pomponazzi)는 예언과 영감을 천체의 영향으로 설명하면서도 멜랑콜리를 물질적으로 설명함
- 16세기 개신교권
- 멜랑콜리에 대한 의학적 전통과 신학적 논쟁이 나란히 공존하는 양상
- 하인리히 불링거(Heinrich Bullinger): 열광주의자들의 ‘멜랑콜리적 환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언급
로버트 버튼: 의학 전통에서 종교적 논쟁으로
- 로버트 버튼(Robert Burton)
- 『Anatomy of Melancholy』: 제3부에서 ‘종교적 멜랑콜리’라는 독자적인 범주를 설정해 상세히 다룸
- 종교적 멜랑콜리(Religious melancholy)
- 종교와 신성한 대상에 끊임없이 집착하여 발생하는 멜랑콜리.
- 과잉되면 열성, 미신, 단식, 열광주의로, 결핍되면 종교적 절망, 신성모독, 회의주의, 무신론 등으로 이어짐
-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이 가졌던 멜랑콜리에 대한 긍정적 시각을 거부함
- 열광주의에 대한 버튼의 설명
- 악마학(Demonology)과 자연주의(Naturalism)를 결합하여 설명함
- 열광주의자, 급진적 청교도, 가톨릭 수도사 모두를 ‘악마의 영향을 받은 멜랑콜리 환자’로 분류함
- 생리적·환경적 요인에 집중하며, 도리어 초자연적인 설명이 부차적이게 됨
- 이후, 메릭 카조본(Meric Casaubon)과 헨리 모어(Henry More)가 이러한 의학적 비판을 계승하고 발전시킴
3. Strange, But Natural Effects: The Medical Critique of Enthusiasm in the Works of Meric Casaubon and Henry More
메릭 카조봉(Méric Casaubon)
- 배경
- Christ Church, Oxford에서 공부하며 로버트 버턴(Robert Burton)과 교류했을 가능성이 있음
- 르네상스 인문주의와 17세기 후반 신고전주의를 잇는 과도기적 인물
- 《열광주의에 관한 논고(Treatise Concerning Enthusiasme)》(1655)는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로 이어지는 성공회 비판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침
- 열광주의의 구분
- 초자연적 열광주의(Supernatural Enthusiasm): 신성한 영감이나 악마의 빙의에 의해 실제로 발생하는 초자연적 현상(방언, 예언 등)
- 자연적 열광주의(Natural Enthusiasm): 영혼이나 뇌의 ‘자연적 열성(natural fervency)’이 지나쳐 초자연적인 것으로 오해받는 상태
- 의학적·자연주의적 관점
- 열광주의의 모든 증상이 ‘멜랑콜리(Melancholy)’의 증상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봄
- 종교적 열광이 성령의 현시가 아니라, 의학적으로 치료되어야 할 질병이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열광주의의 신비성을 제거하려 함
- 가톨릭 영성에 대한 비판적 동기
- 가톨릭의 영성 서적인 《예수의 카트린 수녀의 생애(The Life of Sister Catherine of Jesus)》에 나온 수녀의 신비 체험은 멜랑콜리적 증상일 뿐이라며 불만을 표함
- 열광주의의 유형별 분석
- 예언적 열광주의(Divinatorie Enthusiasme): 자연적 예언을 인정하며, 이를 Species & Emanations라는 물질적 기제로 설명했지만, 우울증적 기질의 사람(atrabilious person)이 보이는 특징으로 단정함
- 관조적·철학적 열광주의(Contemplative and Philosophicall Enthusiasme): 플라톤주의나 신비 신학을 따르는 관조적 철학자들도 열광주의자로 분류했는데, 구체적으로 과도한 관조가 이성을 마비시키고 결국 광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경고했음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역시 감각과 단절된 채 진리를 찾으려고 했으므로, 이에 해당된다고 비판함)
- 엑스터시와 황홀경(Ecstasies and Raptures): 상상력이 감정을 자극하여 Voluntary Ecstacy를 일으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며, 자연적 현상에 수반되는 것으로 봄
- 열광주의 비판의 사회적·정치적 목적
- 공공의 평화 유지: 열광주의에 대한 오해가 공공의 평화를 방해해 왔다고 봄 (팬티 벗고 질주하는 등의 광신적 행동)
- 반(反) 가톨릭 및 반(反) 청교도 정서: 가톨릭의 고행주의나 청교도의 즉흥 기도(extemporaneous prayers)가 실제로는 ‘멜랑콜리적 질환’의 발현임을 폭로함으로써, 그들의 종교적 권위를 약화시키려 함
- 인도적 차원의 제안: 처벌(심문)하기보다는 의사의 진료를 받는 것이 더 인도적임
헨리 모어(Henry More)
- 《열광주의의 승리(Enthusiasmus Triumphatus)》: 당시 팽배했던 퀘이커(Quakers)와 같은 종교적 분파와 신비주의자 토머스 본(Thomas Vaughan)에 대한 반격으로 1656년 출간됨
- 모어는 기독교를 위협하는 두 적을 ‘열광주의’와 ‘무신론’으로 봄
- 열광주의의 생리적 기제
- 동물 정기(Animal Spirits): 열광주의의 거처를 ‘상상력(Imagination)’으로 보고, 동물 정기라는 신체 내 물질의 운동이 상상력에 개입한다는 관점을 내세움
- 퀘이커의 떨림: 퀘이커 교도들의 신체적 떨림은 거룩한 두려움이 아니라, 흑담즙에서 발생한 거친 증기가 경동맥(Arteriae Carotides)을 막아 생기는 간질적 증상으로 해석
- 방언과 예언: ‘우연한 일치’나 ‘세속적인 신중함(ordinary prudence)’의 결과로 보았으며, 멜랑콜리가 초자연적 능력을 부여한다는 르네상스적 믿음을 부정함
- 참된 열광주의와 거짓된 열광주의의 구분
- 플라톤이나 플로티노스의 고결한 열광주의를 ‘영혼의 승리(triumph of the Soul)’라 부르며 옹호
- 플라톤주의자로서, ‘보증된 열광주의(warrantable Enthusiasme)’의 기준을 제시함
- 도덕적 보편성: 그 영성이 특정 집단에만 국한되지 않고 보편적인 선과 겸손을 지향하는가?
- 성경과의 일치: 신과 직접 소통한다며 그리스도의 중재를 무시하지 않는가?
- 보편적 신중함(Prudence): 그 주장이 이성적 토대 위에 있는가?
- 아스트랄 영(Astral Spirit)
- 신체와 영혼을 잇는 매개체로 ‘아스트랄 영’이라는 개념을 도입
- 이 부분이 정화되지 못하고 불순물(멜랑콜리)로 가득 찰 때, 제멋대로인 상상력이 지배하는 ‘열광주의적 꿈’에 빠지게 된다고 봄
- 도덕적 책임론
- 모어는 개인의 도덕적 과실이 멜랑콜리를 악화시켜 결국 광신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하며, 의학적 비판을 도덕적 비판과 결합함
4. Descartes and the Cartesian Philosophy: A Manifestation of Enthusiasm?
- 데카르트의 열광주의자 의혹
- 데카르트가 로지크루시안(Rosicrucian, 장미십자회)과 연결되어 있다는 소문
- 우트레흐트 논쟁(Debates held in Utrecht): 우트레흐트 대학교의 신학자 히스베르트 푸치우스(Gisbert Voetius)와 그의 제자 마르틴 쇼크(Martin Schoock)가 주도함
- 푸치우스는 데카르트가 물리학을 수학화하려는 시도(즉, 양과 형상에 물리적 효율성을 부여하는 것)가 마법(Magic)과 피타고라스적 자연관(the magical and Pythagorean view of nature)의 냄새를 풍긴다고 비판함
- 쇼크는 1643년 저술한 『새로운 데카르트 철학의 경이로운 방법(Admiranda Methodus Novae Philosophiae Renati Descartes)』에서 데카르트의 방법론이 회의주의, 열광주의, 무신론, 그리고 광기로 이어진다고 명시적으로 공격함
- 쇼크는 데카르트가 기하학과 대수학으로 모든 지식의 열쇠를 찾으려는 모습이, 수학을 통해 성경의 신비를 풀려 했던 신비주의자 요한 파울하버(Johann Faulhaber)와 유사하다고 봄 (실제로 데카르트는 파울하버와 젊은 시절 교류함)
- 데카르트의 인식론에 대한 ‘주관주의’적 독해
- 감각의 거부와 고립
- 비판자들은 데카르트가 감각을 불신하고 오직 정신 내부의 ‘관념’에만 의존하라고 가르치는 점을 지적함
- 쇼크와 푸치우스는 감각이야말로 지식의 공공성과 현실성을 보장하는 필수 요소라고 믿었기에, 이를 거부하는 데카르트의 방식이 개인의 주관적인 망상(Fancy)을 진리로 착각하게 만든다고 주장
- “나는 생각한다(Ergo sum)”에 대한 조롱
- 메릭 카조봉(Meric Casaubon)은 데카르트가 ‘에르고 숨(Ergo sum)’을 깨닫기 위해 기존의 모든 지식과 감각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비판하며, 이를 스페인의 알룸브라도스(Alumbrados)나 영국의 퀘이커(Quakers) 같은 열광주의 집단의 엑스타시(황홀경)와 다를 바 없다고 보았음
- 비판자들은 데카르트가 추론 과정 없이 신의 존재를 직관적으로 깨닫는 방식이 전통적인 신비주의자들의 ‘내면의 빛’이나 ‘하나님과의 대화’와 본질적으로 같다고 공격함
- 존 서전트(John Sergeant)의 비판
- 데카르트의 꿈과 병리적 해석
- 바이예(Baillet)가 데카르트의 전기를 출판하며 1619년 11월 10일 밤에 데카르트가 꿨던 세 가지 꿈(Olympica)의 내용을 공개하자, 비판자들은 이를 데카르트가 열광주의자라는 결정적 증거로 활용함
- 신성한 영감의 주장: 데카르트 스스로 꿈속에서 ‘놀라운 과학의 토대’를 발견했으며 이것이 하늘에서 온 것이라고 믿었다는 기록은, 그를 직접적인 신성 계시를 주장하는 전형적인 열광주의자로 낙인찍게 함
- 멜랑콜리(우울증)와 정신질환: 위에트 주교(Bishop Huet)는 데카르트의 꿈이 신의 계시가 아니라 멜랑콜리(Melancholy)나 담배, 맥주 등의 연기에 의한 생리적 현상일 뿐이라고 일축함
- 조나단 스위프트의 풍자: 『통 이야기(A Tale of a Tub)』에서 스위프트는 데카르트를 정신이 나간 혁신가로 묘사하며, 그가 자신의 주관적인 ‘환상’을 세상의 이성으로 군림시키려 한다고 비판함
- 사회적 비판: 공동체와 전통에 대한 위협
- 개인주의와 권위주의의 결합: 데카르트의 방법론은 과거의 모든 권위를 부정하고 개인의 ‘자연의 빛’에만 의존하는데, 비판자들은 데카르트가 전통을 거부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결론이 절대적으로 확실하다고 주장하는 태도에서, 스스로를 신탁처럼 떠받드는 열광주의자들의 전형적인 독단과 오만을 봄
- 대학교와 도서관의 무용론: 메릭 카조봉은 데카르트의 설계가 성공할 경우, 모든 책과 학습이 쓸모없어지고 대학교와 도서관이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함
- 은둔과 비밀주의: 피에르 쁘띠(Pierre Petit)는 고립된 장소에서 명상하는 모습이 종파의 교주와 같다고 조롱함
- 니콜라-조제프 프와송(Nicolas-Joseph Poisson)의 변론
- 데카르트의 합리주의가 오히려 열광주의에 대한 가장 강력한 해독제라고 반박함
- 합리주의: 프와송은 로지크루시안(장미십자회)을 오히려 경험주의자들로 규정하며, 데카르트가 이성적인 추론을 중시하는 반면, 열광주의자들은 환상과 경험에만 의존한다고 주장하며 양자를 엄격히 구분함
- 은밀한 성질(Occult Qualities)의 거부: 데카르트는 신비주의적 개념을 철저히 배격했다는 점을 강조함
- 종교적 순응: 데카르트는 자신의 저작을 항상 교회의 판단에 맡기는 등 매우 경건하고 합리적인 태도를 유지했다고 변호
- 결론과 함의
- 데카르트에게 ‘열광주의’라는 라벨을 붙인 사람들에게 이성이란 ‘전통적인 학습과 공동체의 상식’에 기반한 것이었음
- 오늘날 데카르트는 근대 합리주의의 승리자로 기억되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의 보수적 지식인들에게 그는 ‘자신의 환상을 이성으로 착각한 위험한 신비주의자’에 불과했음
- 프와송은 영국의 왕립학회(Royal Society)와 같은 실험 과학 집단이야말로 로지크루시안과 비슷한 ‘경험주의적 열광주의’에 가깝다고 의심하며, 데카르트의 연역적 합리주의가 훨씬 더 건전한 방식임을 역설함
5. The New Experimental Philosophy: A Manifestation of “Enthusiasm” or an Antidote to it?
- 영국 왕립학회(Royal Society)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실험 철학(The New Experimental Philosophy)’이 당시 사회적 골칫거리였던 ‘열광주의(Enthusiasm)’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 분석
- 실험 과학이 열광주의의 ‘표출(Manifestation)’인가, 아니면 그것을 치료할 ‘해독제(Antidote)’인가?
- 논쟁의 배경
- 실험 철학을 향한 ‘열광주의’ 낙인
- 17세기 후반, 보수적인 비평가들은 데카르트뿐만 아니라 새로운 실험 철학자들을 ‘열광주의자’라고 비난함
- 당시 ‘열광주의’는 직접적인 신성한 영감뿐만 아니라, 연금술사들처럼 자연 연구를 통해 신의 비밀에 접근하려는 주장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됨
- 또한 이 용어는 ‘경험주의자(Empirics)’, 즉 돌팔이 의사나 민간 요법 수행자들과도 연관되어 있었으며, 1660년대에 이르러 보수주의자들은 이 범주에 실험 과학자들을 포함시키기 시작함
- 왕립학회의 자기방어: 해독제로서의 과학
- 옹호자들은 실험 철학이야말로 열광주의에 대항하는 최고의 해독제라고 주장함
- 토마스 스프랫(Thomas Sprat): 저서 『왕립학회사(History of the Royal Society)』에서 새로운 과학이 영국 국교회(Anglican Church)와 같은 기존 기관에 기여할 수 있는 ‘존경받는’ 성격임을 강조함
- 스프랫은 과학이 과거 스콜라 철학보다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질서를 위한 훨씬 더 견고한 지적 토대를 제공한다고 주장함
- 보수적 비평가들의 공격
- 메릭 카조본(Meric Casaubon): 실험 과학자들의 혁신적 성격과 전통 학문(스콜라주의, 인문주의)의 거부가 열광주의와 다름없다고 봄
- 헨리 스터브(Henry Stubbe): 의사였던 스터브는 왕립학회가 기존의 의사협회(College of Physicians)를 무너뜨리려 한다고 의심하며, 과학자들을 ‘Alumbrados in all Sciences’라고 부름
- 인식론적 및 도덕적 쟁점
- 인식론적 비판: 자연의 비밀을 탐구하는 오만
- 스터브는 인간의 본성이 자연의 근본적인 입자나 운동을 정확히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며, 기계론적 철학이나 감각적 철학을 세우겠다는 주장은 ‘장미십자회적인 약속(Rosicrucian promises)’과 같은 허황된 이야기이며, 신만이 알 수 있는 영역을 침범하려는 불손한 시도로 간주함
- 도덕적 가치: 과학적 겸손(Scientific Humility)
- 비평가들은 과학자들이 ‘영적 교만(Spiritual Pride)’에 빠져 있다고 비난했지만, 스프랫과 조셉 글랜빌(Joseph Glanvill)은 오히려 과학이 지적 오만을 치료하는 치료제라고 반박했는데, 스프랫에 따르면, 실험가는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자신의 무지를 인식해야 하는 “신중하고, 세심하며, 겸손한 기독교인”의 표상임 (과거 지식에 대한 겸손이 아니라, 자연 현상 앞에서의 겸손을 의미함)
- 종교적 차원: 과학과 정통 기독교의 결합
- 기적에 대한 회의주의와 정통성 옹호
- 스프랫(Sprat)이 정의한 ‘열광주의자’는 직접적인 신성한 영감을 주장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고대 예언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자연 현상을 신의 즉각적인 징벌(기적, 징조)로 오해하는 천년주의자들을 포함함
- 실험 철학자들은 기적적인 사건에 대해 경계하고 회의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오히려 사도 시대의 진정한 기적의 권위를 보호하고 거짓 기적이 섞이는 것을 방지한다고 주장함
- 이는 기적을 기독교 초기 세기로 한정하려는 당시 개신교 및 성공회의 흐름과 일치하며, 자연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자연과 초자연을 구분하지 못하는 열광주의적 오류를 교정하는 최선의 방법임을 시사함
- ‘자연이라는 책’을 통한 신성 모독 반박
- 실험 과학자들은 하나님의 권능이 예외적인 기적(절대적 권능, Potentia Absoluta)보다 자연의 질서 정연한 법칙(질서적 권능, Potentia Ordinata)을 통해 더 잘 드러난다고 봄
- 스프랫은 자연의 경이로움을 정확히 발견하는 것이 곧 창조주를 찬양하는 길이며, 무지한 자들의 맹목적인 박수보다 자연을 잘 연구한 자의 찬양이 신성(Divine Nature)에 더 적합하다고 주장함
- 스터브(Stubbe)는 이에 반발하며, 인간의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에 달려 있지 자연 철학 연구의 깊이에 좌우되지 않는다고 반박함
- 스터브와 카조본은 과학자들의 이러한 태도가 성경과 교회를 통하지 않고 신에게 직접 접근하려는 또 다른 형태의 ‘지름길(short-cut)’이자 열광주의라고 비판함
- 사회 질서의 지적 토대 변화
- 이 논쟁은 단순히 과학 방법론에 대한 다툼이 아니라, 왕정복고기(Restoration) 영국 사회의 지적·정치적 기초를 무엇으로 삼을 것인가에 대한 투쟁이었음
- 공적 지식과 사적 정신: 스프랫은 열광주의를 ‘사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정신’의 산물로 규정하는 한편, 실험 철학은 여러 과학자의 협력을 필요로 하고 공개적으로 검증 가능한 ‘공적(Public)이고 보편적으로 타당한 사업’임을 강조함
- 새로운 기초를 제공하는 혁신: 비평가들은 실험 과학이 기존의 권위(대학, 의사협회, 스콜라주의)를 약화시키는 전복적인 것이라 보았으나, 실험 철학자들은 기존의 사회적, 종교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새로운 기초’를 제공하는 의미에서의 혁신이라고 주장함
6. Scripture and Reason: The New Theological Discourse on the Eve of the Enlightenment
- 질문: 열광주의에 대한 비판이 계몽주의 전야에 얼마나 세속화되었으며, 열광주의의 도전 자체가 당시 사회·정치 질서의 이데올로기적 기반을 세속화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가?
- 17세기 중반(영국 공화정기 등)에 정점에 달했던 열광주의는 1680년대 후반 프랑스 세벤(Cévennes)의 ‘소예언자들(petits prophètes)’ 운동과 1702~1704년 카미사르(Camisard) 반란을 통해 재등장함
- 퀘이커(Quakers), 네덜란드 콜레기안트(Collegiants), 경건주의자(Pietists), 라바디(Jean Labadie)와 부리뇽(Antoinette Bourignon)의 추종자들이 이 시기 열광주의 비판의 주된 대상이었음
- 신학적 논쟁의 성격 변화: ‘교리’에서 ‘인가(Authorization)’로
- 1660년 이후의 신학적 비판은 이전 시대와 확연히 다른 특징을 보임
- 교리 자체에 대한 논쟁이 드물어지는데, 예를 들어 세벤 예언자들의 교리는 오히려 정통 칼뱅주의에 충실했음
- 비판의 초점은 그들이 전하는 ‘내용’이 아니라, 평신도로서 ‘직접적인 신성한 영감(Direct Divine Inspiration)’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그 권한(Claim)의 정당성 여부
- 열광주의와 무신론·이신론의 기묘한 결합
- 당시 신학자들은 열광주의를 무신론(Atheism) 및 이신론(Deism)과 연결된 위험 요소로 파악함
- 헨리 모어(Henry More): 저서 『열광주의의 승리(Enthusiasmus Triumphatus)』에서 무신론과 열광주의가 겉으로는 반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멜랑콜리(Melancholy)’라는 공통된 기질적 토대를 공유한다고 주장함
- 반성직주의(Anti-clericalism): 열광주의자와 이신론자(예: 매튜 틴달)는 모두 성직자의 권위를 부정하고 평신도와 성직자의 경계를 허물려 한다는 점에서 교회에 동일한 위협이 됨
- 성서 권위의 부정: 비판자들에 따르면, 두 집단 모두 성서를 종교적 문제의 배타적 권위로 인정하지 않고 ‘사적 판단(Private Judgment)’을 전통의 대체물로 세우려 함
- 사회·정치적 질서에 대한 위협
- 평등주의(Levelling Principle): 열광주의자들의 ‘하나님이 모든 육체에 영을 부어 주신다’는 주장은 성직자의 필요성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부유층과 기존 권력 구조에 대항하는 ‘평등주의적’ 위협으로 간주됨
- 잉글랜드 내전의 기억: 비판자들은 ‘레벨러(Levellers)’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열광주의가 초래할 ‘미친 혼란(Mad confusions)’과 사회적 전복의 위험을 경고했는데, 로버트 사우스(Robert South) 같은 인물은 열광주의자들이 영(Spirit)의 이름으로 왕을 결박하고 사회 질서를 파괴하려 한다고 비판함
- ‘영 분별’의 기준 변화
- 요한1서 4:1: “사랑하는 여러분은 자기가 성령을 받았노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다 믿지 말고 그들이 성령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를 시험해 보십시오. 많은 거짓 예언자가 세상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 전통적 해석(16세기-17세기 초): 루터와 칼뱅 등 종교개혁자들은 ‘영’을 ‘교리’와 동일시하여, 그들이 가르치는 내용(Doctrinal content)이 성서적 정통성과 일치하는가가 거짓 예언자를 구분하는 기준이었음
- 새로운 해석(17세기 말-18세기 초): 세벤의 예언자들이나 프랑스 예언자들은 교리적으로는 정통 칼뱅주의를 따랐기 때문에, 교리만으로는 그들을 비판할 수 없었으며, 따라서 그들이 신성한 영감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방식(The claim to inspiration) 그 자체의 신빙성으로 비판의 초점이 옮겨 감
- “그 영감이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가, 아니면 본인의 환상(Fancy)이나 기만인가?”
- 기적(Miracles)과 증거의 과학화
- 기적 중지론(Cessation of Miracles): 정통 개신교 신학자들은 사도 시대 이후 기적은 그쳤다는 원칙을 고수하며, 당대의 열광주의자들이 행한다는 기적이나 예언을 부정함
- 과학적 검증의 도입: 새로운 실험 과학의 영향으로 기적에 대한 ‘공적 증거’와 ‘검증 가능성’이 중시됨 (e.g. 1708년 에임스 박사(Dr. Emes)의 부활 예언이 실패하자, 비판자들은 이를 열광주의의 허구성을 증명하는 결정적 사례로 조롱함)
- 자연주의적 설명: 신학자들은 초자연적 기적으로 보이는 현상들에 대해 원인을 알 수 없더라도 자연적 원인(Natural causes)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기 시작함
- 신앙의 판단자로서의 이성의 부상
- 이 시기, ‘이성’이 성서와 나란히 ‘영 분별’의 최고 기준으로 등극함
- 신학자들은 이성과 성서가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열광주의에 맞서 사회·종교 질서를 수호하는 두 개의 기둥이라고 봄
- 존 로크(John Locke)의 영향: 로크는 『인간 지성론』에서 “무엇이 신의 계시인지는 이성이 판단해야 한다”고 명시하며, 이성을 ‘모든 것의 최종적인 판단자이자 안내자’로 설정함
- 이성의 공공성(Public Criterion): 열광주의의 주관적이고 사적인 확신에 맞서기 위해,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공적 표준으로서의 이성’이 강조됨
- 개인적 판단 권리의 확립
- 누가 영을 시험할 권한이 있는가에 대한 논의도 변화함
- 과거에는 교회의 공적 심사가 중요했으나, 이제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스스로 영을 시험할 ‘양도할 수 없는 고유한 판단 권리’를 가진다는 주장이 힘을 얻음
- ‘진정한 예언’의 심리적·지성적 모델
- 존 스미스(John Smith)의 합리적 예언론
- 에드워드 스틸링플릿(Edward Stillingfleet)의 전통적 접근
- 성령의 작용에 대한 ‘지성주의적’ 해석
- 17세기 말 개신교 신학자들은 성령의 일반적인 작용을 매우 인지적이고 심리학적인 용어로 설명하기 시작함
- 성령이 인간을 회심시키는 과정을 더 이상 추상적이거나 신비로운 방식으로만 보지 않고, 인간의 인지 체계와 심리 구조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로 설명함
- 사무엘 투레틴(Samuel Turrettin)
- 신학적 담론의 변모
- 전통적인 성서 권위에 개인적 이성을 추가하고, 새로운 실험 과학의 증거 방법론을 도입함
- 이러한 변화는 결과적으로 종교적 비판의 근거를 신비의 영역에서 합리적·자연적 영역으로 옮겼으며, 이는 18세기 계몽주의로 나아가는 중요한 지적 토대가 됨
7. The New Medical Discourse and the Theological Critique of Enthusiasm
- 질문: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 열광주의(Enthusiasm)에 대한 비판이 전통적인 신학적 관점에서 새로운 의학적 담론으로 어떻게 변화했는가?
- 열광주의 비판의 ‘의학화’와 ‘세속화’
- 의학화(Medicalization): 열광주의를 신학적 오류가 아닌 신체적 질병으로 규정하기 시작함
- 세속화(Secularization): 18세기 초에 이르러 일부 성직자들은 이 문제를 신학자가 아닌 의사의 영역으로 넘기려는 경향을 보임
- 갈레노스 체액설의 쇠퇴와 기계론적 철학의 등장
- 17세기 중반까지는 멜랑콜리(우울증)를 설명할 때 갈레노스(Galenus)의 4체액설(Humor theory)이 지배적이었음
- 버튼(Burton), 카조봉(Casaubon), 헨리 모어(Henry More) 같은 비판자들도 이에 바탕함
- ‘이아트로화학자(iatro-chemists)’들의 공격으로 체액설이 흔들리기 시작함
- 흑담즙(black bile)의 존재가 의심받게 되자, 멜랑콜리는 원인론적 정의에서 증상론적 정의로 변함
- 데카르트(René Descartes)와 같은 기계론적 철학자들은 체액설을 거의 무시하거나 거부하며, 신체를 하나의 기계로 보는 관점을 제시함
- 동물 정기(Animal Spirits)
- 체액설이 쇠퇴하면서 멜랑콜리와 열광주의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
- 17세기 의학자들은 동물 정기의 오작동을 멜랑콜리의 능동적인 원인으로 보기 시작함
- 데카르트는 동물 정기를 혈액에서 유래한 작고 민첩한 물질적 입자(corpuscles)로 봄
- 옥스퍼드 교수 토마스 윌리스(Thomas Willis)는 화학적 해석과 기계론적 해석을 결합함
- 성직자들의 의학적 논거 수용과 활용
- 17세기 후반 성직자들은 열광주의를 비판할 때 당대의 최신 의학 이론을 적극적으로 도입함
- 헨리 와튼(Henry Wharton): 가톨릭 교회를 비판하며 열광주의자들을 ‘멜랑콜리 환자’로 규정함 (“Irregular motions of the blood, turbulent animal spirits and vapours arising from the stomach”을 멜랑콜리의 원인으로 지목함)
- 열광주의의 심리-신체적 순환 구조
- 비판자들은 상상력과 신체 기능 사이의 ‘상호적 혹은 순환적 관계’에 주목함
- 열광주의자가 특정 대상에 지나치게 몰입하거나 명상을 하면 혈액 속에 거대한 발효가 일어나고, 이것이 뇌로 증기를 전달하여 상상력을 더욱 강렬하고 혼란스럽게 만든다고 봄
- 집단적 전염과 ‘방사물(Effluvia)’ 이론
- 입자적 해석: 퀘이커교도였던 조지 키스(George Keith)는 입자 철학을 인용하여, 한 사람의 영감이 ‘미세한 입자들의 방사(Effluvia)’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된다고 주장하며, 동물 정기가 신체 내부의 매개체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대인적 매개체 역할도 한다고 봄
- 사회적·정치적 함의: 전문가의 영역 분리
- 영혼의 구원은 성직자가, 신체의 치료는 의사가 담당한다는 명확한 구분이 생김
- 로버트 사우스(Robert South): 열광주의의 최선의 치료법은 예언이나 약속이 아닌 의사의 하제(설사약) 복용이나 방혈(피를 뽑는 것)이라고 강조함
- 성직자들이 자신의 신학적 훈련 범위를 벗어난 세속적 학문(의학)에 의존하고 권위를 위임한 것은 계몽주의 전야의 종교적 감수성의 세속화를 보여 줌
- 열광주의자들과 이신론자들의 입장
- 열광주의자들의 수용: 리처드 벌클리(Richard Bulkeley) 경과 같은 지지자들은 예언의 생리적 측면을 부정하지 않고, 신성한 영이 신체적 수단(멜랑콜리나 경련)을 사용하여 목적을 달성한다고 믿음
- 파시오 드 뒤리에(Fatio de Duillier): 뉴턴의 친구이자 과학자였던 뒤리에는 예언을 ‘물질이 특정 단계까지 고양되어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으로 설명하며, 물질주의적 계통과 영적 영감을 결합하려 함
- 이신론자(Deists)의 위협: 샤프츠버리(Shaftesbury)와 같은 이신론자들은 성직자들이 사용한 의학적 논거를 역으로 이용해, 현대의 영감과 성경 속 예언 사이의 구분을 무너뜨림으로써, 성경적 계시 자체의 정당성을 약화시키려 함
- 17세기 후반의 열광주의 비판은 체액설에서 기계론적 입자 철학으로의 의학적 패러다임 변화를 반영함
- 성직자들은 동물 정기와 상상력의 상호작용이라는 의학적 모델을 통해 열광주의를 질병으로 규정함으로써 종교적 열광을 통제하려 했음
8. Shaftesbury and the Limits of Toleration Concerning Enthusiasm
- 시대적 배경과 샤프츠버리의 등장
- 시대적 배경: 1707년 여름, 영국은 ‘프랑스 예언자들(French Prophets)’이라 불리는 집단이 일으킨 종교적 열기로 소란스러운 상태였음
- 《열광주의에 관한 서한(Letter Concerning Enthusiasm)》: 1707년 후반, 제3대 샤프츠버리 백작인 앤서니 애슐리 쿠퍼가 집필함
- 이 서한은 열광주의에 대해 매우 관대한 태도를 촉구하면서도, 그 이면에 이신론(Deism)적 함의를 담고 있어 당시 지성계에 큰 폭풍을 몰고 왔음
- 1689년 관용법(Toleration Act)의 한계
- 1689년의 관용법은 비국교도(Nonconformists)들에게 제한적인 관용을 베풀었으나, 가톨릭교도와 삼위일체 부정론자(Anti-Trinitarians)는 제외함
- 1702년 앤 여왕 즉위 이후, 토리당(Tories)과 고교회파(High Church)는 관용 정책을 축소하려 압박함
- 샤프츠버리 백작(Anthony Ashley Cooper, 3rd Earl of Shaftesbury)
- 제1대 샤프츠버리 백작의 손자로, 존 로크(John Locke)에게 교육을 받음
- 스스로를 ‘로마 공화주의자(Roman Commonwealthman)’로 규정했으며, 관용을 옹호하는 컨트리 휘그(Country Whigs) 진영의 대변인이었음
- 로크의 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샤프츠버리는 1690년대부터 케임브리지 플라톤주의자들의 영향을 깊게 받음
- 열광주의에 대한 ‘의학적 비판’을 받아들여, 우울질(Melancholy)의 문제로 봄
- 열광주의에 대한 샤프츠버리의 급진적 해석
- 종교 자체를 ‘패닉(pannick)’으로 규정
- 의학적 분석을 단순히 열광주의자들에게만 적용한 것이 아니라, ‘종교 일반’으로 확대하여, 종교적 열망을 일종의 집단적 패닉으로 봄
- 구약과 신약의 예언자들이 보여준 신체적 증상(황홀경, 동요 등)이 당대의 프랑스 예언자들이나 고대 이교도들의 증상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주장함
- 처벌, 치료 대신 ‘관용(toleration)’을 주장하며, 형벌로 다스리려 하면 오히려 그 증세가 악화되고 ‘순교자적 열기’만 더해질 뿐이라고 함
- 열광주의의 해소 방안
- ‘농담(Raillery)’: 열광주의를 다스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진지한 박해나 의학적 처치(수술, 절제 등)가 아니라, ‘농담(Raillery)’이라고 주장함
- 좋은 기분(Good Humour): ‘우울한 기질(Melancholic Humour)’에 대응하는 최고의 항암제는 바로 ‘훌륭한 기분(Good Humour)’이라고 주장함
- 1707년 바르톨로뮤 시장(Bart’lemy-Fair)에서 프랑스 예언자들을 익살스럽게 풍자한 꼭두각시 연극이 감옥에 가두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인 치유책이라고 언급함
- 평온한 열광(Serene Enthusiasm)
- 《도덕론자들(The Moralists)》에서 천박하고 야만적인 ‘현대 열성당원’들의 열광과, 고대 시인들처럼 부드럽고 조화로운 ‘평온한 열광’을 사회적·심리적으로 구분함
- 플라톤주의 전통을 계승하여, 위대한 시인이 창작을 할 때 느끼는 ‘신성한 현존에 대한 상상’ 역시 일종의 열광주의라고 정의함
- 샤프츠버리의 서한에 대한 당대의 반격
- 출판되자마자 이신론(Deism)적 공격으로 간주되어 교회 세력(광교회파, 고교회파 모두 포함)으로부터 거센 반발을 샀음
- 에드워드 파울러(Edward Fowler), 사무엘 파커(Samuel Parker), 메리 아스텔 (Mary Astell) 등이 주된 비판자
- 비판의 핵심 논리: “구원의 문제는 장난이 아니다”
- 구원론적 가치의 경시 비판: 비판자들은 샤프츠버리가 종교를 ‘웃음거리’로 다루는 것이 영혼의 ‘구원(Salvation)’이라는 중대한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함
- 성서적 권위 방어: 샤프츠버리가 현대의 광신도와 성서의 예언자를 동일시하자, 교교회 인사들은 ‘신성한 영감’을 검증할 확실한 기준(성서적 일치, 기적 등)이 존재한다고 재차 강조함
- 사회적 질서 위협: 메리 아스텔은 기존 종교를 대중의 조롱거리로 만드는 행위가 공공의 평화와 국가 질서를 유지하는 기반을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비판함
- 악마론(Demonology)의 부활
- 샤프츠버리의 급진적 ‘의학적 비판’은 역설적으로 사라져가던 ‘악마론적 해석’을 다시 불러일으킴
- 열광주의를 단순히 신체적 질병(우울증)으로만 보게 되면, 성서 속의 거룩한 영적 경험마저 생물학적 현상으로 격하될 위험이 있음
- 악마적 열광(Daemoniacal Enthusiasm): 에드워드 파울러 같은 인물들은 프랑스 예언자들이 보여주는 기이한 현상(갑자기 라틴어를 구사하는 등)은 단순한 뇌의 과열이 아니라 ‘악령의 개입’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함
- 하나님이 불신자들을 시험하거나 보이지 않는 존재의 실제성을 깨닫게 하기 위해 사탄의 개입을 허용했다는 17세기 신학적 논리로의 회귀를 의미함
- 샤프츠버리의 서한은 17세기적 열광주의 비판(의학적·정치적 비판)을 계승하면서도, 이를 이신론적 관용과 심리학적 주관주의로 밀어붙임으로써 계몽주의 시대로 넘어가는 가교 역할을 수행함
- 당대 사회에 “어디까지 관용할 것인가?”라는 심각한 질문을 던지게 됨
9. Mechanism and Enthusiasm: From Explicit Antagonism to Implicit Alliance
- 17세기 후반, 18세기 초반의 기계론적 자연철학(Mechanical Philosophy)과 열광주의(Enthusiasm) 사이의 복잡한 관계 변화
- 기계론은 본래 열광주의를 억제하기 위한 ‘해독제’로 고안되었으나, 이후 기계론적 세계관과 열광주의적 종교 체험이 결합되는 독특한 양상이 나타남
- 17세기 후반: 열광주의의 해독제로서의 기계론
- 자연을 엄격하게 물질과 운동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기계론은, 자연 속에서 숨겨진 신성한 진리를 발견하거나 직접적인 신의 영감을 얻으려는 시도를 차단함
- 데카르트 등 유럽의 철학자들은 영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을 철저히 분리하고, 신학과 철학 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기계론을 수용함
- 대륙과 달리 영국의 자연철학자들은 실험철학을 종교적 관심사와 완전히 분리하지 않았음 (e.g. 로버트 보일)
-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 초기에서 중기로의 변화
- 초기(1660-1670년대): 뉴턴은 에테르(Aether)라는 미세한 입자의 기계적 작용으로 중력을 설명하려 시도함
- 중기(1680년대 이후): 1680년경을 기점으로 뉴턴은 기계적 에테르 가설을 포기하고 ‘원거리 작용(Action at a distance)’ 개념을 채택하며 동역학적 관점으로 전환함
- 1687년부터 1713년 사이의 뉴턴은 중력의 직접적인 원인을 ‘신의 의지’로 보며, 물리적 법칙의 핵심에 신의 직접적인 개입을 재도입함
- 뉴턴과 열광주의의 거리두기
- 뉴턴은 헨리 모어(Henry More)처럼 열광주의에 대해 냉담한 태도를 유지함
- 뉴턴에게 신은 자연 법칙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존재였으며, 이는 무신론적 기계론과 초자연적 열광주의를 동시에 반박하는 자연 신학(Natural Theology)의 기초가 됨
- 니콜라 파티오 드 뒤리에(Nicolas Fatio de Duillier)
- 뉴턴의 제자로, 기계론과 열광주의가 어떻게 한 개인 안에서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적인 사례임
- 파티오는 데카르트적 배경을 바탕으로 중력을 미세한 에테르 입자의 충돌로 설명하려는 독창적인 기계론적 모델을 평생에 걸쳐 연구함
- 1706년 런던에 도착한 ‘프랑스 예언자들(French Prophets)’이라는 극단적 열광주의 집단에 매료되어 그들의 대변인이 되었고, 학술적 파탄을 맞이함
- 자신의 기계론적 이론 자체가 ‘신의 직접적인 계시’이며, 열광주의자들의 예언과 보완 관계에 있다고 믿음
- 조르주-루이 르 사주(George-Louis Le Sage)
- 제네바의 학자 르 사주(1724–1803)는 파티오 드 뒤리에의 아이디어를 계승하여 이를 더욱 정교한 체계로 발전시킴
- Ultramundane Particles: 르 사주는 우주가 빛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극도로 작은 원자들로 가득 차 있다고 가정함
- Gravitational Shadow: 두 물체가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Ultramundane 입자들이 모든 방향에서 균등하게 압력을 가해 평형을 유지하지만, 두 물체가 가까워지면 서로가 입자를 가로막는 ‘차폐’ 역할을 하게 되어, 두 물체 사이에는 입자의 압력이 줄어드는 ‘중력의 그림자(Gravitational shadow)’가 형성되고, 그 결과, 바깥쪽에서 가해지는 입자의 압력이 더 커지기 때문에 두 물체는 서로 밀려나듯 가까워지게 된다고 봄
- 르 사주의 변호
- 과학은 명확하고 뚜렷한 이성을 따르지만, 신앙은 ‘거룩한 모호함’ 속에 존재한다고 보았고, 이러한 분리 덕분에, 과학자가 과학적으로는 완벽하게 합리적이면서도 종교적으로는 환상을 보거나 계시를 믿는 ‘열광주의적’ 태도를 취하는 것이 모순되지 않는다고 주장함
- 위대한 과학자들 중에도 열광주의적 면모를 보인 인물이 많다는 목록을 작성하여 파티오를 방어함 (e.g. 데카르트, 파스칼, 뉴턴, 스베덴보리 등)
- 기계론의 변용
- 특별 섭리(Particular Providence): 아주 미세한 입자들의 움직임 속에 모든 사건이 이미 계획되어 있다는 방식으로 ‘특별 섭리’를 설명하며, 뉴턴과 달리 신이 직접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함
- 기적의 예정설: 기적이 자연 법칙을 깨뜨리는 신의 갑작스러운 개입이 아니라, 창조 시점에 이미 기계적 질서 안에 ‘예정’되어 있던 사건이라고 봄
- 기계론적 세계관 안에서 영성과 열광주의를 포용하려 했던 시도는 이후 18세기 후반 낭만주의적 태도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역할을 수행함